옥정이를 만나기 위해, 아침 조례에서 잠시 빠져 나왔던
이순은, 서둘러 동헌으로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그 며칠 사이 동헌에서는, 관아에 성실하게 일할 인재들을
보충하고, 관아의 기강을 재 정비 시키는데 힘을 쏟고
있었다.
그 동안, 전관 사또를 도와, 오랫동안 관아의 일을 봐 왔던
육방 관속들은 선별책으로, 자격에 합당한 자들만 유임을
시켰고, 새롭게 충원된 이들은, 관헌들의 엄격한 관리
하에, 각자, 재량과 재능에 맞게 시험을 치르게 하였다.
그 시험에, 선발된 이들 중에는 무예 영역에서, 월등한
성적으로 합격한 명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지방 관아에서, 지금까지 관행으로 이어져
왔던, 향리의 토호 세력들은, 일제히 퇴보 시키고, 고을
사람들을 주축으로 한 인재를 확충함으로써, 고을의
안위와 질서에, 더욱 더 힘을 실도록 했다.
그런 일정들로, 하루를 바쁘게 보내야 했던 이순은,
정무를 끝내고서야, 옥정이의 처소로 향할 수 있었다.
짧은 아침 나절이였지만, 그 간의 오해를 풀 수 있었다는
사실에, 이순은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이내 반가운 마음에, 방 문앞에 도착하자 마자, 그대로
문을 열어 젖힌 이순은, 놀란 얼굴로 멈춰서야 했다.
때 마침, 옷을 갈아입던 도중이였던지, 옥정이는 반신이
비추는 속치마 차림으로 등을 지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순은, 여지없이 두 눈동자가 흔들리고 말았다.
단아하게 드러난 어깨와 가느다랗게 뻗어 내린 팔은, 뽀얀
살빛으로 빛을 발했고, 옅은 치맛자락 사이로, 은은하게
감겨든 옥정이의 자태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 그 자체
였다.
더구나, 기분 탓인지, 어디선가 코 끝을 자극해 오는 꽃향기
마저, 이순의 마음을 영문없이 흔들어 놓았다.
옥정이는, 방에 들어선 이가 별단이라고 생각 되었던지,
개의치 않는 말투로,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대로
경직되고 말았다.
이순은 눈을 떼지 못한 체, 넋을 놓고 서 있었고, 옥정이는
사색이 된 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몸을 움츠린 옥정이가, 재빨리 등을 지고 돌아서자, 이순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던지, 귓볼마저 빨갛게 달아 올랐다.
당황한 이순은, 정색을 하며, 서둘러 방문을 닫고 돌아서야
했다.
그때였다.
돌연히 전각 뒤뜰에서 옥정이를 찾는 별단이의 목소리가
목전으로 들려왔다.
일순 난감해진 이순은, 다시금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옥정이와 다시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옥정이의
손을 잡아 이끌고는, 병풍 뒤로 몸을 숨겨 들었다.
무언가 지금의 어색한 상황을 별단이에게 들킬 수 없다는
생각에, 정황없이 움직인 것이다.
얼떨결에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이순에게 보이고 만
옥정이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겨를도 없이, 또 다시
이순의 손에 붙들려, 병풍 뒤로 이끌려 들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별단이는, 유난히
유쾌한 목소리로 외쳐왔다.
“아가씨!…………제가 글쎄 아무래도 그 분가루를 그대로
버리기는 너무 아까워서, 급하게 한지를 찾아 왔구만요.
그 분꽃 냄새가 워낙에……………어라?”
별단이는 옥정이가 보이지 않자, 이리 저리 둘러 보다가
문뜩, 바닥에 놓여 있는 옷에 시선이 머물렀다.
“아이고! 이 옷 색감 좀 봐, 어쩌면 이리도 고운지……………
내가 만일에 이 옷을 입으면, 우리 옥정이 아가씨처럼
고와 보일려나?”
…………………………………………
…………………………………
……………………………………………
“에구, 그래 봐야, 옥정 아가씨 미모에는 따라 갈 수가
없지…………이렇게 고운 옷을 입고, 사랑하는 낭군
앞에 짠 하고 나가면……………그래보면………………
옥정 아가씨는, 나으리가 그토록 애정 어린 눈길로
봐 주시는데 왜, 그렇게 힘들어 하시는지 몰라……………
아이고, 그냥 나 같으면, 망설일 것도 없이, 그대로
나으리 품에 안겨 들텐데………………”
………………………………………
………………………………
………………………………………
“나으리, 이제 그만, 소녀를 품어주셔요. 그렇치 않으면,
저 홀로 눈물짓고, 가슴앓이 하던 날 밤들로, 또 다시
상사가 날까 두렵습니다…………오, 그래 옥정아……………
이리 오너라………………”
별단이는 이순의 흉내를 내 가며, 혼자 연기를 해 보이더니,
마침내는 발을 동동 구리며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별단이의 말장난에 이순도 실소가 터져 나오는지, 겨우나마
소리를 죽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 웃음 덕분에 작게나마 여유가 생겼던지, 이순은 살며시
곁눈질로 옥정이를 바라 보았다.
옥정이는 여전히 숨을 죽인 체, 긴장된 모습으로 이순에게
등을 지고 서 있었다.
옥정이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오자, 이순은 옥정이의 손에
살며시 힘을 실었다.
그런 와중에도 반라의 옥정이의 모습이 눈 앞에서 아른
거리자, 이순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
지금 눈 앞에서 바라보게 된 옥정이는, 얋은 속치마 하나
만으로, 이순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체, 당황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옥정이의 모습에, 이순도 긴장된 듯, 마른 입술을
적셨다.
그때였다.
문갑을 여닫는 소리가 몇 차례 들려 오더니, 별안간 병풍
바로 곁에서, 별단이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순과 옥정이는 일시에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이순은 초조해하는 표정으로 자신과 마주쳐오는 옥정이를,
그대로 자신의 품으로 끌어 들였다.
맨살이 드러난 어깨를 이순이 뒤에서 끌어 안아 버리자,
옥정이는 일 순간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그렇치 않아도, 선비님을 뵙기가 난처한 상황에, 하필이면
이런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다니…………………
더구나 별단이의 등장으로, 점점 더 곤경에 처해지자,
옥정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무언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순에게 보여 버리고
말았다는 창피함과 낮뜨거움에, 어딘가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다는 심정이였다,
얼마 후, 별단이는 청소를 시작했던지, 갑작스럽게 병풍
한 쪽을 밀어 붙이더니, 부지런히 방에 날린 분가루를
닦아 내기 시작했다.
손바닥에 작은 땀이 송글하게 젖어 든 이순은, 조용히
숨을 죽이며, 별단이의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으로 인해, 난처한 상황에 이르게 된
옥정이의 심경도, 과히 염려스러웠다.
초조해진 마음에 고개를 조아리던 이순은, 옥정이를 조심
스럽게 내려다 보았다.
갑작스럽게 끌어 안는 바람에, 그대로 자신의 품에 갇혀
버린 옥정이는, 여전히 긴장된 모습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옥정이가 떨고 있음에도 아랑곳 없이, 이순은 온통, 옥정이의
드러난 살결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러다 문뜩, 옥정이의 목덜미에 멈춰서고 만 이순은,
한 동안 시선을 뗄 줄 몰랐다.
뽀얀 살빛을 발하며, 가늘게 이어진 목선에 이어, 고아하게
미끄러진 옥정이의 어깨는 마치, 은은한 달빛이 아스려지는
듯이, 가냘프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일 뿐이였다.
이순은 몇 차례나 숨을 들이키며, 자신의 두근거림을, 애써
짓눌러야 했다.
그러다 어느 결에, 옥정이에게 한층 더 가깝게 닿게 된
이순은, 작게 새근 거리는 옥정이의 숨소리에, 심장은 더
할 수 없이 고조되어 왔다.
일순간, 옥정이의 살갗 내음에, 괴로운 듯, 입술을 깨문
이순은, 더 이상 주체를 할수 없다는 듯이, 옥정이를 힘껏
끌어 안더니, 그대로 옥정이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보드라운 옥정이의 살갗과 그 은은하게 베여버린 꽃
향기에 취해 버린듯, 이순은 그렇게 옥정이의 모든 것을,
다 자신의 가슴 안으로 품고 싶었다.
이순의 뜨거운 입김이 옥정이의 살갗으로 전해지자,
옥정이는 그대로 모든 신경이 촉각을 세우더니, 이내
숨 마져 막혀왔다.
그 신경 하나 하나가 세세하게 곤두서더니, 그렇치 않아도
경직되어 있던 옥정이는, 이제 울것 같은 조바심으로,
입술을 바짝 깨물어야 했다.
이미 온몸으로 미열이 오른것도 모자라, 이제는 옥정이의
귓볼 마져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신의 목덜미와 어깨 부근에 와 닿는 이순의 간지러운
숨결에, 심장마져 두서없이 뜀박질 하기 시작하자,
옥정이는 더 이상 그 순간을 견뎌낼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감싸안고 있는 이순의 팔을 풀어내야 했다.
그러나 이순은, 옥정이의 그런 노력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별단이가 청소를 마무리 짓는지, 병풍을 다시 세워 오자,
옥정이는 또 다시 경직되듯 멈춰섰다.
“이만하면, 이제 방은 깨끗해졌고, 이 분가루도 다 쓸어
담았으니, 아쉽지만, 그래도 버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잘 되었구먼……………그런데 아가씨는 대체 어딜
가신거래?……………”
………………………………………
…………………………………
……………………………………………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청소가 다 끝났던지, 별단이가 작게
궁시렁거리며, 바깥으로 나갔다.
이순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 듯,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옥정이는 별단이가 방을 나가자 마자, 온 몸에 힘이 빠져
버린 듯, 기운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을 것같은 옥정이를, 이순은 조심
스럽게 바닥에 주저 앉히며, 옥정이와 마주 하게 되었다.
이미 자신의 모든 기운들이 소실되어 버렸던지, 옥정이는
자신의 양 어깨를 잡고 있는 이순을, 밀어 내지도 못햇다.
그져 난감하고 곤혹스런 표정으로, 이순과 마주해야 했다.
옅은 미열에 홍조까지 올라온 옥정이는 벽에 기댄 체,
이순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가슴 께를 감싸 안은 체, 어쩔줄 몰라하는 옥정이를,
이순은 그저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 볼 뿐이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손을 들어올려, 옥정이의 이마의
잔머리를 쓸어내렸다.
순간, 그 손길에, 움찔하며, 눈을 감아버리고 마는 옥정이를,
이순은 그저 애틋하게 바라 보았다.
그 며칠 사이, 옥정이의 심중을 알게 된 이순은, 그 일로,
옥정이가 자신을 피해 버리자, 더욱 더 옥정이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가슴 한 켠에 젖어드는 아련함 만큼이나………………
그리고, 그 그리움이 아스려져 올 때마다, 옥정이의 곁에
다가가지 못하게 될까봐, 내심 초사 안달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애가 타는 마음들이 큰 여울목이 되어, 지금,
이 순간, 이순의 가슴 속에, 불꽃처럼 일어났다.
이내, 옥정이를 향한 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이순은 한 쪽 벽에 손을 짚더니, 그대로 옥정이에게 고개를
숙이며 다가갔다.
순간, 눈을 감고 있던 옥정이는 돌연히 닿아 온 이순의
입술에 당혹하고 말았다.
하지만 잠시 후, 옥정이는 작게 숨을 들이키더니, 이내
이순의 키스를 순순히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
한 동안, 이순과의 갈등으로, 침울해져 있었던 옥정이는,
그 날 아침, 이순으로부터 전해 듣게 된 오해의 전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순이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이순에게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부끄러움에 낯뜨거워진 옥정이는 어떻게 이순을 마주
해야 좋을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중하게 대해오는 이순의 자상함에,
옥정이는 이제,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순의 키스를 받아
들인 것이다.
이순은, 마치 여린 꽃잎 위에, 입을 맞추어 가듯, 그리고
그 꽃잎 위에 이슬을 굴리듯, 그렇게 아련하게 옥정이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숨끝으로 닿아 온 이순의 체취에, 옥정이는 그 동안 쌓여
있었던 복잡했던 심경들이, 스스럼없이 풀려 나갔다.
얼마 쯤, 옥정이 와의 키스에 거리를 좁혀 가던 이순은,
옥정이의 허리를 끌어 안더니, 한층 더 가깝게 밀착해
왔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애틋하게 파고드는 이순의
키스에, 옥정이는 자신의 옷 모양새 일랑은, 아랑곳 없이
이끌려 들었다.
이순은 어느 새 옥정이의 목과 쇄골 쪽으로 입을 맞추어
가더니, 점점 더 뜨거운 애무와 함께, 아래 쪽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순간 옥정이는, 자신의 가슴 께에 와 닿는 이순의 뜨거운
입김에, 화들짝 놀라,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의 옷 모양새가 생각났던지, 그대로
이순을 밀어내고 말았다.
지금 옥정이는, 얇은 속치마 자락 하나로 겨우나마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이순이 바짝 밀착해 오는 바람에,
너무나 아슬한 지경까지 이르고 있었다.
옥정이가 서둘러 이순에게서 몸을 떨어뜨리려 하자, 이순은
옥정이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그대로 사무치게 끌어
안았다.
“옥정아……………지금은 이대로 그대를 보내기 싫다.
지금은……………이대로 그대를……………하아……………”
“…………………………………”
이순은, 너무나 애가 닳았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든 옥정이를 품고 싶다는 욕망이,
득달같이 이순의 신경을 자극해 온 것이다.
가없는 꽃이 자신 앞에서 개화를 해 온 것처럼, 아름다운
옥정이를 눈 앞에 마주한 지금으로서는, 그 어떤 이성도
분별할 수 없이, 흔들리고 말았다.
간혹 옥정이를 품고 싶다는 욕구에도, 내색할 수 없이,
마음을 죽여 왔던 이순이였다.
결코,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그래서 자신의 신분을, 옥정이에게 떳떳히 밝히기까지,
옥정이를 지켜 낼 것이라, 이순은 단단히 마음 각오를
다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여지없이 동요 되버리고 만 이순은, 겉잡을 수
없는 심정을, 그대로 토로하고 말았다.
이순의 고뇌에 찬 한숨 소리에, 옥정이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이순을 바라보았다.
한양에서 회양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어 왔던가.
기뻤던 일이나, 가슴 아팠던 일들도, 그리고 위험 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이순은, 언제나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겼었다.
마음 속 연심이 깊어 질수록, 저 스스로 괴로워하며 방황
했었던 그 오랜 시간속에서도, 이순은 늘 그랬던 것처럼,
따스한 손길을 내 밀어 왔다.
언제나 변할것 없이, 자신을 바라봐 주는 이순의 애틋한
그 눈길을……………그리고 그 마음을………………
옥정이는 그런 이순을 위해서라면, 무엇 하나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내 옥정이는, 자신의 가슴을 감춰 안았던 팔을, 서서히
풀어 내렸다.
너무나 생각지 못한 상황에, 이순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옥정이는 이것으로 선비님과의 인연이 다 한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그렇게 생각했다.
이내 옥정이는 마음을 굳힌 듯, 짐짓 떨리는 눈망울로,
이순을 올려다 보았다.
순간 이순은, 여지없이 동공이 흔들리고 말았다.
그리고 갈등하는 눈빛으로, 옥정이를 바라 보았다.
잠시 후, 옥정이는, 어딘가 차분해진 모습으로, 작게 숨을
가다듬더니, 저 스스로 가슴 언저리에 있는 치마 끈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고개를 조아린 체, 치마 끈을 풀어 내리는 옥정이는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런 옥정이의 모습을, 이순은 고심스러운듯이 바라보았다.
얼마 후, 옥정이가 잠시, 고개를 들어 올렸을때, 이순은
그대로 옥정이의 손을 잡아 쥐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옥정이를 품안으로 끌어 안더니, 애끊는
목소리로 말을 토해냈다.
“하아, 이런 바보같은………………옥정아………………
내 정녕, 그대를 어찌하면 좋으냐………………”
“…………선비……님?………………”
옥정이는 치마 끈을 풀어 내리던 자신을, 갑자기 안아버린
이순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왜 그 순간, 옷자락을 내리려던 자신을 끌어 안아 버렸는지,
옥정이는 그져 의아할 뿐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이순의 품속에 안겨 있어야 했다.
이순은 자신을 향해, 옷 가지를 풀어 내리는 옥정이의
모습에, 다시 한번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야 했다.
그 동안 수 많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사리지 않았던 옥정이였다.
더구나 시간이 다른 이 곳에서, 어떻게 만나게 된
옥정이던가.
이순은, 옥정이를 자신의 인연으로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한 때, 욕망으로, 안주 해서는 안될
것이라 생각했다.
잠시 후, 이순은 갑자기 자신의 도포를 벗어 내더니,
그대로 옥정이의 어깨에 자신의 도포를 둘러 주었다.
옥정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순은 올려다 보자, 이순은
사뭇 아쉬움이 베인 목소리로 말을 들려왔다.
“그대를 품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듯 싶구나.”
“………선비……님………………”
“아니, 지금은 감내 할 것이다. 그래서 언제인가 제 때가
되면, 그 때, 그대를……………기쁘게 맞이 할 것이다.”
“……………………………………”
“그러니, 두 번 다시 이런 모습으로 과인을 유혹하지는
말거라. 지금 이 순간에도………………그대를 바라보고
있기가 참으로 괴롭구나.”
“유혹이라니요, 아닙니…………………”
순간 이순은 옥정이의 말을 막아 버리듯, 그대로 뜨거운
입술로 포개어 왔다.
무언가 한 없이 아련하고, 애틋한 숨결속에, 그리고
너무나 절실하고 간절한 서로의 감정들이, 숨길 수 없이
엉켜 들었다.
헤아릴 수 없이 멀고 먼 길을, 겨우나마 돌아온 것처럼,
그 기쁨의 감흥들이 밀물 밀려오는 듯이, 그렇게 옥정이의
마음 속으로 스며들었다.
별안간 자신을 막고 나선 이순의 심정을, 옥정이는 여전히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지극히 사랑스럽다는 듯이 닿아 오는 이순의
숨결에, 옥정이는 그 어떤 이유라도, 상관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이순과의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설레이는 마음은 어느새 가슴 벅찬 심장 소리로 전달되어
왔고, 그 동안 자신의 가슴 속에 젖어 들었던 암울함들도,
이제는 서서히 이순의 사랑에 잠들어 갔다.
오로지 마음 속 깊이 간직할 수 있었던 아련한 사랑 만을,
이제는 있는 그대로 내 보이고 싶었다.
그 어떤 것 하나도 잘못된 선택은 없었고, 어긋나게
돌아 선 마음도 없었다.
그저 이순의 존재감 하나 만으로도, 옥정이의 가슴 속은
이미 깊은 충만함에 젖어드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옥정이를 바라 보던 이순은, 깊은 한 숨과 함께, 고뇌
섞인 목소리를 들려왔다.
“내 이제 돌이켜 보니, 그릇된 실책들로, 수 많은 방심을
하고 말았구나. 어쩌면 그대가 감당해야 했던 고난 또한,
내 과오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비록은 이런 말 뿐인
위로로 그대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하지만, 이제는 나 또한, 그대와 함께 할 것이다. 그대와
함께라면, 그 어떤 고난도, 결코, 힘들다 생각지 않겠다.
그러니, 옥정아, 이제 그대의 마음의 짐을………………
그만, 내려 놓을 순 없겠느냐.”
“………………………………………”
“………………응!…………………”
어딘가 애가 닳은 듯, 다그치쳐 오는 이순의 추궁에,
옥정이는 사뭇 떨리는 눈길로 이순을 올려다 보았다.
“…………선비님, 그 동안 저는, 선비님께 도움이 되기는
커녕, 되려 곤란하고 낭패스러운 일들로, 선비님을 힘들게
해 왔을 뿐입니다. 하온데, 이리도 부족하고 미숙한 저를………………
어찌 그렇게까지, 헤아려 주시는 것인지요.”
“지금은………………아직 때가 이르지만, 언제인가
시간이 지나면, 그대도 이런 내 마음을 알게 될 것이야.
그러니 이제는 흔들리지 말고, 오직 내 말 만을 믿고
따라 주었으면 싶구나. 나 또한……………그대의 손을
결코, 놓치 않을 것이니………………”
“………………선비님…………………”
옥정이는 이순의 말 속에 전해져 오는 확고한 신념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무언가 울컥하며 가슴속으로 번져드는 감흥에,
소리없이 젖어들 뿐이었다.
그 동안 저 홀로 감래했던 애환들을 헤아려 주듯이, 이순은
너무나 따스한 목소리로, 옥정이의 눈을 맞춰 온 것이다.
이순의 위로와 격려가 힘이 되었던지, 옥정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져 왔다.
그리고 자신의 용기를 복돋아 주는 이순이 고마웠던지,
옥정이는 기쁜 듯이, 이순의 목에 메달리며, 안겨왔다.
이순도 옥정이의 기뻐하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던지,
흐뭇한 미소로 옥정이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되뇌였다.
‘나는 이 나라 조선의 국왕, 이순이다. 무엇하나 아쉬워
할 것도 없는 내가…………이토록 애닳아 하며, 마음을
전할 만큼, 그대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인
것이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을 밝힐 순 없지만, 언제인가
그대가 나의 모든 권좌마저도 받아 들일수 있는 날이
오도록, 난 그대의 손을 놓치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 갈
것이다. 그러니, 옥정아……………더 이상 두려워 하거나,
작아 지지 말고, 오직 나만 보거라, 나 이순 만을………………’
아직은 갈 길이 한참이나 멀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두 사람 앞에 펼쳐지게 될지,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순은, 옥정이와의 인연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순은, 자신의 품에 안겨 든 옥정이를, 지극히 사랑스럽
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어떤 때는 손끝 매무새 하나, 흠 잡힐 것 없이, 강단지고
다부져 보이는 옥정이였지만, 또 어떤 때는 작고 사소한
일에도 하염없이 눈물을 짓고 마는, 연약한 옥정이였다.
그 때문인지, 이순은 한 때라도 옥정이가 보이지 않을라
치면, 이를 때 없이 불안함에, 시달려야 했다.
이순은, 그 며칠 전, 옥정이를 만날 수 없어, 번민에 쌓였던
일들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고개가 내 저어졌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서, 옥정이를 향한 애끊는 고전이
일단락 지어 졌다는 생각에, 소리없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안도감 때문인지, 이순은 그제서야 평정을 되찾은 듯,
온화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미지사진은 옥갤에서 옮겨왔어요. 문제가 될시 삭제하겠으니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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